안녕하세요 폴리테그의 tarzo 입니다.
밥 묵고 와서 또 글 씁니다.
비가 올락 말락 하다가 이윽고 비가 쏟아지내요.... 장마가 왔는가 봅니다.
초창기 피터 칼 파베르제의 삶은 어느정도 안정된 삶이 었습니다.
당시 상류층의 유행 아이템이었던 그랜드 투어를 다닐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여유롭다고 해서 그가 그의 아버지 사업을 물려 받을 수 있었을런지는 모르지만,
그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 당시는 물론 지금의 나이로 봐서도 아주 오랜 기간동안 여러나라에서 수학(修學)을 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최근의 트렌드는 압도적인 천재가 '짠'하고 나타나 IT 기업 설립해서 상장해서 억만장자가 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대세이지만...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반면에 파베르제의 삶은 어찌 보면 좀 고리타분한 점이 있습니다.
천재이지만 노력형 천재이고 오랜동안 수련하였고,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았다는 점도 뭔가 요즘에 인재상하고는 많이 달라 보이지 않나요? 물론 한궈의 수많은 재벌가 자식들은 많이들 물려 받지만요ㅋㅋ
근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가업에 프라이드가 있었고, 그 가업을 이어 받아서 좀 더 진일보하는 기업으로 키우길 바랬고, 그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오래 공부를 했다....
뭔가 실현 가능한 계획처럼 느껴지는건 저뿐인가요?
평생 일(70살 정도)을 하다보면 실현 가능성이 실패할 수(40% 이하)도 성공할 수(60% 이상)도 있지만 유의미한 가능성이 보인다는 얘기죠.
물론 파베르제는 금수저이기 때문에 그점은 저랑은 다릅니다. ㅋㅋ
하지만 목표를 위해 노력해서 성취를 했다는 스토리는 누구나가 실현 가능한 스토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점이 파베르제에게서 진정 배워야 할 점이라고 느껴졌어요.
아무튼 이제 파베르제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하는 시절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2. 사업체 인수
그의 스승이자 멘토인 히스키아스 펜딘이 1882년 사망하자 파베르제는 홀로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수년이 지나 독일 드레스덴에서 수학하고 온 그의 동생 아가톤(1862-1895)이 형을 도와 파베르제 하우스의 디자인을 담당하게 됩니다.
칼과 아가톤은 용감한 형제였네요.ㅎㅎ
188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판-러시안 전시회에서 파베르제 하우스는 큰 화제를 일으키며 금메달과 성 스타니슬라오스 메달을 획득합니다.
성 스타니슬라오스 메달은 로마노프 왕조가 수여하는 매달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번 전시회에서 황실의 눈에 들었단 이야기!!
(추가로 러시아는 독일과는 달리 황가의 문양이 양 대가리 독수리인데 이게 왜 그런지도 나중에 한번 살펴 보면 재미가 있어 보이네요.)
그럼 황제의 눈을 사로잡은 작품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파베르제가 재현한 구 겨울궁전 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된 기원전 4세기경 스키타이의 골드 뱅글 레플리카
레알 기원전 4세기경 스키타이의 골드 뱅글 보물
어떠세요?
갓직히 전 차이점을 많이 알겠는데 황제가 눈이 상당히 안좋은 편이었나 봅니다. ㅋㅋ
암튼 러시아 차르는 레알과 레플 차이를 모르겠다며 입이 마르게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 스타니슬라오스 메달 주죠? 그게 뭔소리냐 하면 이제 파베르제 하우스의 포커스는 러시아 황실에 정조준이 된단 소리입니다.
피터 칼이 파베르제 하우스를 물려 받았을 때, 그가 목표했던 아티스트로서의 주얼러가 되기 위한 최초의 걸음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도 그럴것이 맨날 18세기 프랑스 스타일 주얼리를 레플로 만들다가 갑자기 황실에 주얼리를 공급할 수 있게되면서 자국의 독창적인 에르미타주 커렉션을 구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었고, 그 '관찰'을 바탕으로 자기 고유의 유니크한 스타일로 주얼리를 개발할 수 있겠되는 시점이 바로 요 시점입니다.
주얼리 부케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9세기 당시에는 18세기 금 세공기법으로 탄생한 주얼리 부케가 유행이었습니다.
당근빠따로 파베르제도 이 부케에 영향을 받게 되죠.
근데 그전에는 단순 카피정도 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그가 가진 천재적인 관찰력 뿌라스 자포니즘을 결합해 완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겁니다.
자포니즘은 저도 뭐 미술쪽으로 아는게 없지만 당시 서양 미술 전반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들 하네요...쩌비...
백합 부케 또는 마돈나 백합 달걀
암튼 이정도의 레베루로 주얼리를 예술로 진일보 시킵니다.
그 결과 사라졌던 에나멜 아트가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예전에는 무슨 보석이 세팅이 되었는가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이 때부터 하나의 개별적인 보석이 세팅이 어떤 방식으로 되었는가를 더 관심있게 보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주얼리를 보는 기준이 다이아몬드가가 세팅된 부케 였다면,
파베르제 이후의 주얼리를 보는 기준은 에나멜이 길로쉐 패턴으로 들어가고 루비는 파베세팅으로 마무리된 부케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들어갔는지 보다 어떻게 들어갔는지가 더 중요해졌단 말씀!
what 보단 how가 중요해진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knowhow가 중요합니다 ㅎㅎ
한마디로 소재 가치에 포커싱을 했다가 파베르제 이후로는 세팅에 포커싱을 맞췄단 이야기!
그만큼 파베르제는 당시의 주얼리 트렌드를 이끄는 선구자였구요.
1885년에 이르러선 차르 알렉산더 3세는 파베르제 하우스에 황실 왕관을 금세공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주기에 이릅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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